〈시그널〉은 2016년 tvN에서 방영된 범죄·스릴러 드라마로,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가 무전기로 연결되어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사건들, 타이트한 전개, 정지훈 작가의 촘촘한 대본과 김원석 감독의 연출력이 어우러져 한국 장르 드라마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린 수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사회적 메시지와 감정선을 동시에 품은 웰메이드 드라마로 지금도 재방영 작품을 볼 때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며 한 형사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기에 소개한다.
시간을 거슬러 정의를 외치다, 두 시대의 교차 수사
〈시그널〉은 ‘시간’을 매개로 한 수사극이자, 미제 사건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담은 강렬한 드라마입니다.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 분)은 우연히 낡은 무전기를 통해 과거의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과 교신하게 되고, 이를 통해 오래전부터 해결되지 못한 미제 사건들을 함께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무전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정의가 시간의 벽을 넘어 실현될 수 있다는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박해영은 어릴 적 친구의 납치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된 인물로, 기존 수사 방식에 회의를 품은 이성적이고 냉소적인 캐릭터입니다. 반면 이재한은 원칙과 신념을 고수하는 정의로운 형사로, 조직의 압박과 정치적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들의 시공간을 초월한 공조는 단순한 수사 협력에 그치지 않고, 정의가 왜 지체되고 왜 뒤늦게라도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시그널〉의 드라마틱한 설정은 현실에서 벌어진 수많은 미제 사건, 사회적 무관심, 구조적 은폐 등을 바탕으로 하기에 더 큰 몰입을 유도합니다. 특히 '화성 연쇄살인사건', '이태원 살인사건', '어린이 유괴사건' 등 실화를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는 시청자에게 당시의 분노와 아픔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드라마 이상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무전기의 울림, 정의의 재구성
〈시그널〉은 단순히 범인을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정의가 오랫동안 유예된 이유, 그 사이 침묵해 온 사회 구조의 책임을 끝까지 파고듭니다. 과거 이재한이 수사하던 사건 중 상당수는 상부의 압력, 증거 은폐, 위선적인 언론 플레이 등에 의해 묻혔으며, 박해영은 그 잔해 위에서 다시 실체를 복원해 나갑니다. 드라마는 진실이 시간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누군가 그것을 찾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실체는 가까워진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형사 차수현(김혜수 분)은 과거와 현재를 모두 경험한 인물로, 두 사람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감정선의 깊이를 더합니다. 그녀의 존재는 여성 형사로서의 성장기이자, 이재한에 대한 감정과 정의 실현 사이에서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정의를 외면했던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인간형으로 묘사됩니다. 드라마의 구성은 에피소드별로 정교하게 짜여 있으며,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현실과 직결된다는 구조는 시청자에게 큰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특히 과거를 바꾸면 현재도 변한다는 '나비효과'식 전개는 수사극의 전형을 확장시키며, 장르물 속에서 시간과 감정, 윤리를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서사적 깊이를 증폭시킵니다. 모든 인물이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은 복합적인 구조는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미덕입니다.
지연된 정의, 그럼에도 반드시 도달해야 할 이유
〈시그널〉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단순히 현실의 불의를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간을 넘어서라도 진실을 마주하려는 의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연대의 힘을 말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이어지는 황당한 설정 속에서도 시청자들은 진심을 느끼고, 정의란 제도나 직책이 아닌 ‘사람의 용기’로부터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깨닫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박해영이 과거를 바꾸려는 간절한 선택, 이재한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는 모습은 ‘진실의 무게는 시간에 의해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강렬한 진술이 됩니다. 시청자에게 가장 큰 울림은 사건 해결 그 자체보다는, 그 정의가 도달하기까지의 간절함과 희생에서 비롯됩니다. 〈시그널〉은 한국 장르 드라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과 드라마적 완성도를 동시에 잡은 희귀한 작품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의 외침은 결국 현실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지금의 우리는, 과거를 들여다볼 용기가 있는가? 그리고 그 용기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